こんがり、パン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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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빵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빵을 좋아하지만 퍽퍽하거나 겉이 딱딱하거나 잔세공 및 잡다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빵을 좋아한다. 로겐브로트, 피셀, 바게트, 포카차, 르뱅빵, 베이글, 치아바타…

이런 빵들은 그 자체의 맛이 강하지 않아 안주로 삼기 적절하고 기분에 따라 어레인지하기도 좋다. 살을 뺀답시고 탄수화물을 줄이고 있기에 항상 구비해 두지는 않지만, 왕왕 내 손에 들려 우리집 문턱을 넘는 빵들이기도 하다.

 내가 빵을 좋아하게 된 건 어머니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 빵 체인점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기 시작했을 무렵, 운 좋게도 우리집 근처에 몇몇 체인점이 생겼다. 그 때부터 꽤나 자주 어머니와 함께 빵집에 가서 빵이 가득 담긴 봉투를 안고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빵은 파리바게트의 하드롤이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그 밖에도 새 빵집이 생길 때마다 어머니는 꼭 가서 이것저것 사오셨다. 한스베이커리, 나폴레옹 제과점, 조성모 베이커리 등 아마 당대의 빵은 다 섭렵하지 않았을까 싶다.

급기야 어머니는 당신 손으로 제과제빵을 시작하셨다. 제과제빵 교실에 다니시며 매주 생크림 케이크, 초코 케이크, 바바로아, 마들렌, 휘낭시에를 필두로 한 디저트에서 각종 빵들이 집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집에 있는 가스 오븐은 쉴 틈이 없었고 가족들이 빵을 다 소비하지 못하자 어머니는 시시때때로 주변인들에게 케이크, 과자, 빵을 나누어주셨다. 가족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나는 항상 시식 담당으로, 어머니의 창조물을 배불리 먹어 살이 오동통 올랐다. 당신 책임이면서 항상 어머니는 나더러 살쪘다고 놀리셨기에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도 또한 즐거운 추억이다.

 대학에 들어갈 즈음이던가. 어머니를 따라 나도 빵과 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그분처럼 요리에 대한 넘치는 재능은 없었기에 간단한 초콜릿, 양갱, 쿠키, 머핀을 만드는 데 그쳤지만.

그러다가 중국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본격적으로 제빵을 시작했다. 일을 하던 곳이 그렇게 번화한 곳이 아니었기에 마음에 차는 빵을 사먹을 곳이 별로 없었고,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작은 오븐을 사서 빵을 굽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우선 중국 수퍼마켓에는 면을 만드는 데 특화된 중력분밖에 없고, 빵을 만들 강력분이나 과자를 만들 박력분은 타오바오에서 구입을 해야 했다. 이게 한국처럼 총알배송이 아니라 구매 후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일주일이 걸릴 때도 있었고, 터져서 오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발효빵을 만들 때는 반죽을 충분히 치대야 하는데 이게 상당히 시간과 힘을 필요로 했다. 밀가루 반죽을 테이블에 놓고 족히 한시간은 후두려 팼던가. 이 작업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바로 반죽기를 구입하여 다행히도 죄없는 반죽을 폭행하는 일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서는 금방 벗어날 수 있었다.

참으로 열심히 빵을 구웠다. 미니 오븐으로는 한번에 미니식빵 한두개, 디너롤이나 성형빵 4-6개가 고작이었기에 굽고 꺼내고 굽고 꺼내고의 반복이었다. 때때로 팀원들의 생일이면 케이크, 파운드케이크, 파이 등을 구워 회사에서 단촐한 생일파티를 하기도 했다. 다 같이 타향살이 하는 처지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시작했던 일이고, 제빵사나 파티시에가 만드는 것 같은 세련된 물건은 구워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박한 케이크를 두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태국에 가서는 조금 더 본격적이 되었다. 집이 넓어졌으니 오븐도 좀 더 큰 것을 사고 반죽기도 한층 커졌다. 만드는 빵의 바리에이션도 조금 늘어서, 가족 취향에 맞춘 소시지빵, 야채빵, 피자빵, 콘빵 등을 한번에 30개씩 생산해 냈다. 그리고 밸런타인 데이 같은 때는 아망드 쇼콜라, 브라우니, 쿠키 여러 종, 머핀 여러 종 등 도합 십여가지 과자를 무더기로 구워 가족의 회사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제법 인기가 있었다고 들었기에 꽤 보람을 느꼈다고 기억한다.

일본에 와서는 집이 좁아지고 일이 바빠져 중국이나 태국에 있었던 때처럼 빵을 굽지는 못한다. 하지만 재료를 개량하여 섞는 일, 반죽기에 넣고 적절한 반죽이 될때까지 반죽하는 일, 부재료를 만들어서 반죽에 채우고 모양을 잡는 일, 무엇보다도 빵이 구워질 때 집 안을 가득 채우는 향긋하고 따스한 냄새. 이 모든 것을 좋아하기에 언젠가는 다시 빵을 구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빵에 관한 내 추억은 대부분이 즐거웠기에 서점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망설임 없이 손에 들고 계산했다. 일본 문필가들이 멋진 필력으로 자아낸, 빵에 관한 멋진 추억애 대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책을 열었지만 웬걸, 내 예상과는 달랐다.

중국 사기를 읽지 않았기에 彘肩を辞せぬ壮士가 무엇인지 몰랐다.

고사를 몰라 櫪に伏する老驥가 무엇인지 몰랐다.

미국 문화에 둔해 マッコール라는 잡지가 무엇인지 몰랐다.

영미시에 관심이 없었기에 ルパート・ブルック이 썼다는 길고 아름다운 시를 몰랐다.

영미 문학에 문외한이기에 ゼロ弾きのゴーシュ라는 이야기를 몰랐다.

바느질에 조예가 없어 ドロンワーク은 무슨 신형 드론 기술인가 했다.

일본 영화를 외면했기에 魚河岸の兄弟分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하, 문필가들과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나의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인텔리전스에 분배해야 했구나. 게다가 작자의 연령이 각양각색이어서 근대문학을 읽을 때나 등장하는 한자나 어휘가 등장하는가 하면 어느 사이엔가 현대의 어휘로 돌아오곤 하여 들로리안을 타고 시대를 오가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의 추억을 엿보고 싶었기에 오랜만에 사전도 찾아보고, 인터넷도 뒤져가며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었다.

빵은, 지금은 동전 한두 개(한국 기준 지폐 한두장)로 살 수 있는 흔해빠진 물건이기에 현대인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좀처럼 없을 물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낫토 얹은 빵을 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전후 일본에서 어떤 빵을 어떻게 팔았었는지 알게 되었고 노새가 끄는 빵 판매 수레에 대한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기숙사 반지하 방에서 촌스러운 빵을 먹으며 청춘을 만끽했던 여학생들이 우아한 부인으로 탈바꿈하는 이야기도 즐거웠고, 언제 어느 시대에나 고지식한 교사는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이야기도 읽었다. 빵에 관한 행복한 일화에서 시작해서 말 그대로 눈물 젖은 빵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는 겪지 못한 시대와 그 시대의 이야기들을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로 경험했다.

항상 보는 물건이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며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대리 체험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대단히 귀한 경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쇼핑은 성공적이었고, 이 책이 내 서가에 꽂을 수 있던 것은 행운이었다. 이 책을 발견할 기회를 주었으며 함께 읽어 준 R양에게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