こんがり、パン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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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빵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빵을 좋아하지만 퍽퍽하거나 겉이 딱딱하거나 잔세공 및 잡다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빵을 좋아한다. 로겐브로트, 피셀, 바게트, 포카차, 르뱅빵, 베이글, 치아바타…

이런 빵들은 그 자체의 맛이 강하지 않아 안주로 삼기 적절하고 기분에 따라 어레인지하기도 좋다. 살을 뺀답시고 탄수화물을 줄이고 있기에 항상 구비해 두지는 않지만, 왕왕 내 손에 들려 우리집 문턱을 넘는 빵들이기도 하다.

 내가 빵을 좋아하게 된 건 어머니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 빵 체인점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기 시작했을 무렵, 운 좋게도 우리집 근처에 몇몇 체인점이 생겼다. 그 때부터 꽤나 자주 어머니와 함께 빵집에 가서 빵이 가득 담긴 봉투를 안고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빵은 파리바게트의 하드롤이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그 밖에도 새 빵집이 생길 때마다 어머니는 꼭 가서 이것저것 사오셨다. 한스베이커리, 나폴레옹 제과점, 조성모 베이커리 등 아마 당대의 빵은 다 섭렵하지 않았을까 싶다.

급기야 어머니는 당신 손으로 제과제빵을 시작하셨다. 제과제빵 교실에 다니시며 매주 생크림 케이크, 초코 케이크, 바바로아, 마들렌, 휘낭시에를 필두로 한 디저트에서 각종 빵들이 집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집에 있는 가스 오븐은 쉴 틈이 없었고 가족들이 빵을 다 소비하지 못하자 어머니는 시시때때로 주변인들에게 케이크, 과자, 빵을 나누어주셨다. 가족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나는 항상 시식 담당으로, 어머니의 창조물을 배불리 먹어 살이 오동통 올랐다. 당신 책임이면서 항상 어머니는 나더러 살쪘다고 놀리셨기에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도 또한 즐거운 추억이다.

 대학에 들어갈 즈음이던가. 어머니를 따라 나도 빵과 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그분처럼 요리에 대한 넘치는 재능은 없었기에 간단한 초콜릿, 양갱, 쿠키, 머핀을 만드는 데 그쳤지만.

그러다가 중국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본격적으로 제빵을 시작했다. 일을 하던 곳이 그렇게 번화한 곳이 아니었기에 마음에 차는 빵을 사먹을 곳이 별로 없었고,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작은 오븐을 사서 빵을 굽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우선 중국 수퍼마켓에는 면을 만드는 데 특화된 중력분밖에 없고, 빵을 만들 강력분이나 과자를 만들 박력분은 타오바오에서 구입을 해야 했다. 이게 한국처럼 총알배송이 아니라 구매 후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일주일이 걸릴 때도 있었고, 터져서 오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발효빵을 만들 때는 반죽을 충분히 치대야 하는데 이게 상당히 시간과 힘을 필요로 했다. 밀가루 반죽을 테이블에 놓고 족히 한시간은 후두려 팼던가. 이 작업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바로 반죽기를 구입하여 다행히도 죄없는 반죽을 폭행하는 일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서는 금방 벗어날 수 있었다.

참으로 열심히 빵을 구웠다. 미니 오븐으로는 한번에 미니식빵 한두개, 디너롤이나 성형빵 4-6개가 고작이었기에 굽고 꺼내고 굽고 꺼내고의 반복이었다. 때때로 팀원들의 생일이면 케이크, 파운드케이크, 파이 등을 구워 회사에서 단촐한 생일파티를 하기도 했다. 다 같이 타향살이 하는 처지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시작했던 일이고, 제빵사나 파티시에가 만드는 것 같은 세련된 물건은 구워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박한 케이크를 두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태국에 가서는 조금 더 본격적이 되었다. 집이 넓어졌으니 오븐도 좀 더 큰 것을 사고 반죽기도 한층 커졌다. 만드는 빵의 바리에이션도 조금 늘어서, 가족 취향에 맞춘 소시지빵, 야채빵, 피자빵, 콘빵 등을 한번에 30개씩 생산해 냈다. 그리고 밸런타인 데이 같은 때는 아망드 쇼콜라, 브라우니, 쿠키 여러 종, 머핀 여러 종 등 도합 십여가지 과자를 무더기로 구워 가족의 회사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제법 인기가 있었다고 들었기에 꽤 보람을 느꼈다고 기억한다.

일본에 와서는 집이 좁아지고 일이 바빠져 중국이나 태국에 있었던 때처럼 빵을 굽지는 못한다. 하지만 재료를 개량하여 섞는 일, 반죽기에 넣고 적절한 반죽이 될때까지 반죽하는 일, 부재료를 만들어서 반죽에 채우고 모양을 잡는 일, 무엇보다도 빵이 구워질 때 집 안을 가득 채우는 향긋하고 따스한 냄새. 이 모든 것을 좋아하기에 언젠가는 다시 빵을 구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빵에 관한 내 추억은 대부분이 즐거웠기에 서점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망설임 없이 손에 들고 계산했다. 일본 문필가들이 멋진 필력으로 자아낸, 빵에 관한 멋진 추억애 대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책을 열었지만 웬걸, 내 예상과는 달랐다.

중국 사기를 읽지 않았기에 彘肩を辞せぬ壮士가 무엇인지 몰랐다.

고사를 몰라 櫪に伏する老驥가 무엇인지 몰랐다.

미국 문화에 둔해 マッコール라는 잡지가 무엇인지 몰랐다.

영미시에 관심이 없었기에 ルパート・ブルック이 썼다는 길고 아름다운 시를 몰랐다.

영미 문학에 문외한이기에 ゼロ弾きのゴーシュ라는 이야기를 몰랐다.

바느질에 조예가 없어 ドロンワーク은 무슨 신형 드론 기술인가 했다.

일본 영화를 외면했기에 魚河岸の兄弟分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하, 문필가들과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나의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인텔리전스에 분배해야 했구나. 게다가 작자의 연령이 각양각색이어서 근대문학을 읽을 때나 등장하는 한자나 어휘가 등장하는가 하면 어느 사이엔가 현대의 어휘로 돌아오곤 하여 들로리안을 타고 시대를 오가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의 추억을 엿보고 싶었기에 오랜만에 사전도 찾아보고, 인터넷도 뒤져가며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었다.

빵은, 지금은 동전 한두 개(한국 기준 지폐 한두장)로 살 수 있는 흔해빠진 물건이기에 현대인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좀처럼 없을 물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낫토 얹은 빵을 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전후 일본에서 어떤 빵을 어떻게 팔았었는지 알게 되었고 노새가 끄는 빵 판매 수레에 대한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기숙사 반지하 방에서 촌스러운 빵을 먹으며 청춘을 만끽했던 여학생들이 우아한 부인으로 탈바꿈하는 이야기도 즐거웠고, 언제 어느 시대에나 고지식한 교사는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이야기도 읽었다. 빵에 관한 행복한 일화에서 시작해서 말 그대로 눈물 젖은 빵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는 겪지 못한 시대와 그 시대의 이야기들을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로 경험했다.

항상 보는 물건이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며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대리 체험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대단히 귀한 경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쇼핑은 성공적이었고, 이 책이 내 서가에 꽂을 수 있던 것은 행운이었다. 이 책을 발견할 기회를 주었으며 함께 읽어 준 R양에게 감사를 보낸다.

신의 기록을 읽고…

 

로제타 스톤을 해독한 사람들의 이야기, 신의 기록을 읽고 간단하게 감상문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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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지구 상에서는 많은 문명과 언어가 사라졌고 현재도 수십 개의 언어가 소멸 위기 언어로 분류되고 있다. 또한 학자들은 머지 않은 미래에 현존하는 언어 중 반수는 사라질 것이라 예견한다. 지금의 우리는 이미 소멸한 문명과 언어를 다양한 기록을 통해 발견 또는  연구할 수 있고, 본서에 나오는 로제타 스톤도 그 중 하나다. 이와 같이 물질적으로 보존되기 쉬운 기록은 추후 발견될 가능성도, 해독될 가능성도 그럭저럭 높을 것이다.
그렇게 남겨진 기록들을 발견하곤 읽는 방법도 뜻도 모르는 언어를 해독하는 학자들의 연구 방법과 그 과정을 읽으며, 만약,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현대 인류와 대부분의 문명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대에는 석판은커녕 종이로 기록하지도 않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책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록이 실존하지 않는 ‘데이터’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만약 불운한 사건으로 인해 문명을 잃은 인류가 수십, 수백 년 후에 바닷속에서, 모래사막에서 태블릿을 발견했을 때, 이는 어떻게 작용할까? 그런 상상을 하며 이 감상을 작성해 보았다. 부디 현대의 우리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PC, 테블릿 등이 후대의 나칼 비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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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와 바깥을 차단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벽에 덧댄 천 사이로 햇빛이 비쳐들었다. 막대기와 판자를 이용해 얼기설기 얽은 선반 위에 어지러이 쌓인 물건들 사이로 먼지가 흩날렸다. 쌓여있는 물건들은, 두께나 크기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부분이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필수품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잡동사니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 물건들이다. 그 잡동사니를 주워모아 자신의 거처에 모아둔 괴짜이자 이곳의 주인 준은 어둑어둑한 거처 귀퉁이에 설치한 작업대 앞에서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오래도록 손질하지 않아 거추장스럽게 늘어진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던 물건을 향해 눈을 돌렸다. 조부에게 들었던, 마치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의 타래를 되짚으며 방금 막 뚜껑을 들어낸 물건의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검은색과 은색 판자들의 조합체. 그것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어떤 용도로 쓰이던 것일까 유추해 보았다. 조부의 말을 바탕으로 추리해 보자면 가장 크고 검은 이 판자가 기록을 보존하는 장치일까? 아니면 이 물건 자체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장치일까, 각 판이 가진 색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허리를 꺾은 갈대처럼 생긴 이 관은 무엇일까. 물이 길을 따라 흐르듯 무언가가 이 관을 따라 이동하는 것일까. 이 작은 돌기들은 무엇일까. 상단부와 하단부에 직선으로 몇 줄 배치되어 있는데 모두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은 또…

 오래동안 머리를 싸매고 궁리해 보았지만 아직도 결론에 다다르지 못한, 스스로에게 수십 수백 번 물었던 질문들을 곱씹으며 매만지던 물건을 다소 거칠에 밀어냈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떠올랐지만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거처 입구 옆에 세워 둔 호신용 막대기를 집어들고 두어 차례 휘둘러 보았다. 원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가벼운 데에 비해 제법 단단하며 삐걱거리기는 해도 길이 조절이 가능해 멋모르고 덤비는 사람을 상대할 때 유용했다.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며 우울한 눈으로 그 막대기를 바라보았다. 그가 모은 물건 중 하나는 이 막대기와 이어진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사실 자신의 컬렉션은 조부의 말처럼 지식의 보고, 기술의 결정체, 인류를 다시 번영으로 이끌 물건이 아니라 단순히 탈착 가능하고 사이즈가 다양한 둔기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몇 있었으니.
 엄습하는 어두운 생각을 떨쳐버리고 거처 입구에 세워 둔 나무판을 밀어냈다.

눈부신 햇살에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후 빛에 눈이 익숙해지고, 변함없는 풍경이 그에게 다가왔다. 준은 반쯤 무너진 건물에 꾸린 자신의 거처 입구에서, 그가 살아가는 세상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부식된 건물들, 군데군데 나뒹구는 정체 모를 조형물들. ‘자동차’라고 불렸다는 흉물스러운 물건들의 잔해들. 과거에는 저것들을 가지고 빠른 속도로 다른 곳에 이동할 수 있다 했지만 과연 그랬을까. 지금은 그냥 길을 가는 데 존재하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무성한 풀과 덩굴들, 그리고 흙으로 덮여 있어 제대로 살펴보기란 쉽지도 않았다. 조부는 본인도 부모님께 들었다며, 툭하면 준을 무릎에 앉혀 놓고 꿈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과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상대일지라도 눈 깜빡할 사이에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수단, 기름이라는 것을 사용해 날아가는 새만큼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탈것들, 화면을 누르기만 하면 무슨 물건이든 하루이틀 안에 집 문 앞에 도착하는 사회 시스템.
하지만 그 무엇도 준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이 황량한 세상에 살았고, 그런 편리함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편리한 세상 따위, 조모가 들려주던 날개 달린 요정이니 불을 뿜는 용이니 하는 이야기와 똑같을 뿐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된 이유는 수십 년도 더 전에 세계 각지에 근소한 시간차를 두고 일었던 지진 때문이라고 했다.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큐모에, 거기다 전 지구를 덮친 거대한 지진. 그리고 그 지진의 연쇄작용으로 각지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준은 살면서 화산을 본 적이 없지만 듣자 하니 산의 꼭대기에서 연기와 먼지와 자갈과 뜨거운 액체가 쏟아지는 현상이라 했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라, 지진으로 인한 해일이 전 세계를 덮쳤다. 전례가 없는 자연재해의 연타에 인류는 무력하게 스러질 수밖에 없었다. 건물들은 무너지고, 모든 생활 기반이 불타고 쓸려갔다고 했다. 교통과 통신 수단은 궤멸되어 가족, 친척, 지인들이 살아남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으며 그저 내가 살아남았음을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들었다. 어느 지역에 어느 정도의 인류가 생존해 있는지조차 확인이 불가능했고, 지진으로 인해 어느 정도로 지형이 바뀌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살아남은 한줌의 인류는 아무것도 없어진 세상에서 간신히 생명을 이어갔다.
폐허를 뒤져 쓸만한 물건이나 먹을 것, 입을 것을 확보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모든 생활 인프라가 사라진 상황에서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수렵과 채집, 제작을 근근하게 체득해 삶을 이어갔다. 인류는 지능과 자유로운 두 손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준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잡념을 털어버리고 걸음을 옮겼다. 매일같이 다니는 길이었지만 잠만 자고 일어나면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들을 헤치며 잠시간 나아가자 익숙한 판자문이 보였다.

“양 아저씨, 저 왔어요.”

조심스레 판자문-입구에 판자를 덧대어 놓은 것뿐이지만-을 밀며 들어가자, 가마 옆에 앉아 감자를 까던 수염 덥수룩한 남성이 고개를 들었다.

“준, 늦었구나. 아픈 건 아니고?”

적당히 대꾸하며 양 아저씨의 앞에 앉아 감자를 집어들었다. 준이 올 것이라고 알았던 듯 미리 놓여 있던 조악한 뼈칼을 들어 감자를 까기 시작했다.
양 아저씨와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부터 친밀하게 교류하던 사이였다. 양 아저씨 부부와 준의 부모님은 함께 밭도 일구고 수렵을 하던 사이로, 자식이 없기 때문인지 준을 매우 아꼈다. 그리고 준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그를 아들처럼 대해 주었다.
준 또한 그들을 자식처럼 따르며 행동을 함께 했지만 아무래도 수렵에 대한 재능은 없었던 듯 방해만 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양 아저씨와 부인을 도와 밭을 경작하고 생활에 쓸만한 도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다행히도 그는 괜찮은 농부였으며, 가죽을 손질하는 데에는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옷에 넣으면 좋을 듯한 식물을 발견해 종자와 식물 자체를 채집해 두었다. 이것을 재배하는 데 성공하면 분명 이 근방 사람들의 의복 사정이 좀 더 나아지리라.

“그래서, 그 잡동사니들은 언제까지 쌓아 둘 생각이냐?”

열심히 감자를 깎는데 이미 귀에 딱지가 앉히도록 들은 그 말을 양 아저씨가 다시 꺼냈다. 그는 외딴 곳에서 살며 시간만 나면 잡동사니를 찾아다 거처에 쌓는 준의 생활이 탐탁치 않은지 그쪽 거처를 정리하고 본인들 부부와 함께 살지 않겠냐는 말을 늘 하곤 했다.
하지만 준은 도저히 그의 조부가 남긴 그 그처와 물건들을,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모아 온 물건들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 이유가 조부와의 추억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언젠가는 찬란했던 인류 문명을 되찾을 실마리라도 찾아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지는 스스로도 아직 알지 못했다.

지겨운 양 아저씨의 설득이 시작되려는 찰나, 아주머니가 구운 고기 토막을 넙적한 돌판에 얹어 들고 들어왔다. 말수가 적고 몸집도 작은 여성이었지만 의외로 그녀는 동물의 가죽을  깔끔하게 벗겨 무두질까지 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어찌나 손놀림이 능숙한지 준은 도저히 따라할 수조차 없었으며 양 아저씨도 부인 앞에서는 꼼짝도 못 했다. 잔소리에서 벗어나게 해준 아주머니에게 마음으로 감사하며 돌판을 받아들었다. 오늘은 토끼고기인 모양이었다. 양 아저씨와 준은 감자 깎는 일은 잠시 쉬고 가마에서 굽던 감자를 꺼내 고기와 곁들여 간단하게 식사를 마쳤다.
그 후는 늘 그랬든 밭일을 돕고 양 아주머니를 도와 가죽을 손질했다.
때때로 양 아저씨네 작물이나 가죽, 고기와 바꾸기 위해 잡다한 물건들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준은 부리나케 달려와 물건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컬렉션에 추가할 만한 물건은 없었다.

 해가 기울 무렵, 준은 약간의 말린 고기와 구운 감자를 약간 얻어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집에서 쫓겨났는지 벌을 받는 중인지, 허물어져 가는 건물 밖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에 이마를 댄 남루한 행색의 아이를 발견했지만 애써 외면하고 발을 움직였다.
자신의 거처에 도착했을 때, 전혀 뜻밖의 생물체와 마주쳤다. 귀와 등은 검은색이었지만 다리와 배 부분은 황토빛인 난생 처음 보는 네발짐승이었다. 준의 거처 앞에서 앞다리는 쭉 편 채 엉덩이를 깔고 앉은 그 짐승은 혀를 길게 빼물고 헥헥거리며 준을 바라보았다. 새까만 눈동자와 앉아 있는 자세에서 공격성은 엿보이지 않았지만, 드러난 이빨을 보고 준은 호신용으로 들고다니는 막대기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낯선 것은 그 네발짐승 뿐만이 아니었다. 거처 입구에 기대어 둔 판자가 옆으로 치워져 있던 것이었다. 침입자인가, 대체 누구지. 무엇 때문에? 그보다 이 네발짐승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집으로 들어간 순간 뒤에서 덮치는 건 아니겠지. 온갖 생각이 교차했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짐승에게 등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옆걸음질로 조심조심 이동해 거처로 들어갔다. 일단 입구 쪽에서 보기에 내부가 흐트러진 흔적은 없기에 안심했지만, 침입자가 누구인지, 아직도 이곳에 머물고 있는지, 목적은 무엇인지 무엇 하나 알 수 없었기에 조바심이 느껴지고 막대기를 쥔 손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그때, 밖에 있던 네발짐승이 큰 소리로 한번 짖었다. 제법 큰 울음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침입자가 안쪽에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의 모습을 본 준은 헛것인가 싶어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빛나는 머리카락이었다. 마치 드리워진 석양의 끝자락처럼 빛나는 색을 잠시 넋놓고 보던 그는 잠시 후에야 그의 푸른 눈과 우람한 체구를 볼 수 있었다. 정면으로 맞붙기에는 승산이 전혀 없어보이는 거구의 남자였다. 어린 시절에 조모에게 들었던 이야기에 나오던 거인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그 거구의 남자는 준을 보자 활짝 웃으며 한발 성큼 다가섰다. 준은 자연스럽게 한발 뒤로 물러났다.

“Are you 준?”

알 수 없는 언어에 발음도 불분명했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며, 또 자신을 찾아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여차하면 양 아저씨네 집까지 도망갈 생각으로 거처 입구를 향해 뒷걸음질쳤지만 어느 틈엔가 일어난 네발짐승이 길을 가로막았다.
이판사판이다. 호신용 막대기를 쥔 손에 힘을 주자 침입자는 다급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Wait! Let’s talk, 얘기! 이야기!”

뻔뻔하기 그지없는 남자였다. 남의 거처에 멋대로 침입해서 뒤지고 있던 주제에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것일까. 그는 준의 컬렉션들을 손가락질하며 말을 이었다.

“저거, 재미, 많이, 봐?”

대체 무슨 헛소리인가. 준은 역시 이 말도 통하지 않는 침입자를 쫓아내거나 도망치는 게 최선이라 생각하며 어떻게 빠져나갈지 머리를 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양 아저씨 말대로 입구를 하나 더 마련해 두는 게 나았으리라.
다행히도 그 정도 눈치는 있는지 그는 다급하게 허리춤을 더듬어 두루마리를 꺼내 펼치더니 정신없이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interesting… 재미…, stuff… 물건… 재미있는 물건! 많이!”

재미있어 보이는 물건이 많다는 뜻인가.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가. 이런 종류의 비야냥은 이골이 날 정도로 들었기에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단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하는 생각만이 준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좀처럼 준의 경계심이 누그러들 기색이 보이지 않자, 그는 꿇어 엎드려 자신이 가져온 거대한 꾸러미를 풀어 헤치더니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서 바닥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본 준의 눈이 서서히 휘둥그래지고, 막대기를 쥔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급기야 막대기를 내던지고 그가 꺼낸 물건들 쪽으로 달려가 털썩 무릎을 꿇고 정신없이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거처 안까지 들어온 네발짐승이 준 옆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지만 그런 것에 주의를 쏟을 여력이 없었다.
한순간에 준의 혼을 쏙 빼놓은 침입자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씩 웃었다.

“나, 알렉스. 우리, 할래? 이거, 같아.”

다시 한 번 인류를 발전과 번영으로 이끌 두 연구자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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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Reign 보는 중

요즘 아무 생각없이 볼 드라마를 찾다가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Reign 이란 드라마를 발견, 약간 흥미가 생겨서 보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유년기(청년기?) 이야기이며, 미숙한 메리와 프랑수아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스토리가 메인 테마로 현재 시즌 4까지 나왔다 합니다.
전 아직 시즌 2중반입니다만..

주역 메리와 그녀 주변의 레이디 3명이 예쁘고 그리는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복식 및 장신구가 꽤 화사해서 많은 눈요깃거리가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왕자 2명은 약간 여성들 포스에서 밀리는 면이 있고, 복식 및 인물 고증은 잘 안 되었다고 보입니다. 로맨스 라인을 위해 창조된 캐릭터도 있고요. 미국내에서도 고증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중세유럽판 기황후라는 평가도 언뜻 보였습니다.

캐릭터성 면에서는… 주역들의 성향이 너무 휙휙 바뀌어서 얘 갑자기 왜이러지? 하는 부분도 조금 있었고요, 메리와 프랑수아가 시즌 2까지 왔는데 아직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아쉬웠습니다. 두 사람의 대사 중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훅은 자주 듣는) 게 “나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야!/난 여왕이야!” 와 “나는 카톨릭 군주를 다스리는 카톨릭 왕이야!”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
현재까지 가장 일관된 모습을 지녔으며 가장 맘에 드는 캐릭터는 카트린입니다.
나쁜짓은 많이 하지만 목적이 일정하고 그러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총평은 그냥 중세풍 가십걸이라는 느낌으로 편하게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는 드라마 같습니다. 더 볼지 안볼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아마 시간이 많으면 더 보지 않을까 싶네요.

테라스 하우스-도시남녀- 시청

넷플릭스에서 테라스 하우스란 흥미진진한 리얼리티 쇼를 해 주기에
공개되어 있는 분량까지 시청했습니다.

남자 셋, 여자 셋, 도합 여섯 명의 남녀가 한 집에서
생활하며 겪는 에피소드들을 그린 쇼입니다.
이 여섯명은 전혀 만나본 적이 없는 사이이고,
대본도 없다고 하네요.

답답하거나 짜증나는 면도 있었지만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소감을 간추리자면

*운동만 하던 애는 이래서…
*꼰대 즐!
*바쁘면 연애도 못하는구나ㅠㅠ
*여우 쌤통이다!!!
*선수필승
*말을 해 말을!!!!!

이 정도일까요?
한국어 자막에 초월번역을 뛰어넘은 오류가 많아서 그건 좀 불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 통틀어 가장 완소였던 캐릭터는
중도하차한 여성 출연자의 전남친…. 헉헉.

*드라마에 질린 분
*전형적인 일본인 성격을 가진 캐릭터들을 보고 싶은 분
등에게 추천할 만한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다음 화들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봤습니다.

그냥 언뜻 타이틀만 보고 지나갔던 영화였습니다만,
새로 산 TV의 3D기능을 테스트하고 싶다는 바깥냥반의
열화같은 성원(?)에 힘입어 구매,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타이틀을 고른 건 저지만 딱히 이유가 있어서
고른 건 아니고… 그냥 다른 타이틀은 딱히 안 끌려서^^;;

대략의 감상평은
-주연급의 유대감 생성 과정이 미흡하다.
그냥 보다보면 얘들 갑자기 왜 이래? 이런 느낌이 듭니다.
-연출이 저렴하다.
그냥 때때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캐릭터들의 심리묘사가 부족하다.
어떤 행동을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심리묘사가 그렇게 자세하지 않아
이 역시 뜬금포를 선사할 수 있습니다.

그냥 오락영화로서는 좋았다고 봅니다.
그루트 귀요미…

그나저나 3D영화란 눈과 머리가 아파지는 물건이군요.
눈과 머리가 아파져서 끝까지 보기 좀 힘들었습니다.
적응 문제일까요…

미드 그림(GRIMM) 시즌 3까지 감상

아마존 인스턴트 비디오에서 그림을 시즌 3까지 봤습니다.
집에서 공부할 때 소리나는 게 좋아서 그냥 무작정 틀어 놓기도 하지만..
(3번쯤 시즌 1의 1화에서 시즌 3끝까지 지나갔네요.)

아무튼 재미있는 드라마입니다.
세계 각국의 설화를 각색해서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고,
진지함과 개그가 적절히 혼합되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대체 주인공급들은 얼마나 보살 혹은 둔탱이인거냐 생각하네요.
애들린에게 그렇게 당하고서도
여전히 속아넘어가는 걸 보면
참 답답합니다.
그리고 야이 민폐들아 로잘리랑 먼로 좀 내버려 둬!!!

시즌 4가 기대됩니다만,
몰아보는 걸 좋아해서 아직 시청하지 않고 있네요.
종영된 다음에 보려 하는데… 아직 두 달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빨리 종영되라ㅠㅠ

말레피센트 감상

바깥양반이 미국에서 이런저런 블루레이를 주문하면서 제가 보고 싶어하던
말리피센트를 같이 사 주더군요.
안젤리나 졸리의 팬이기도 하고,
기존에 있던 이야기를 각색해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스타일도 꽤 좋아하기 때문에 매우 보고 싶던 타이틀이었습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자세한 내용은 못 쓰겠지만
간략하게 얘기해 보면…

-이 영화를 보고 머릿속에 남는 건 졸리언니의 포스뿐
(덤으로 서번트와의 희미~~~~한 러브노선 혹은 미친 충성노선…?)
-주인공들의 아역 시절 배우들이 넘 겉늙었다
-까마귀 긔요미
-때때로 스토리상 안 이어진다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편집된 장면 보니 알 것 같다.
시간 문제로 자른 건가?

기존의 디즈니풍 권선징악, 혹은 왕자공주님 러브스토리는 이제 식상하다
하는 분들께는 추천합니다.

미드 ARROW 감상중

요즘 ARROW라는 미드를 보고 있습니다.
마블 코믹스쪽에서 나온 것 같은데
나름대로 재미있네요.
음모에 빠져 살해당한 아버지의 뜻을 받아
도시를 지키는 도련님 영웅의 이야기이며,
배트맨의 뒤를 잇는 부자히어로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의 개성도 강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상위급입니다.
그리고 여성들의 다양한 의상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주인공의 멘탈이 아직 불안정한지 주위 상황에 너무 휘둘리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도 기대됩니다.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여주인공이 매우 찌질캐릭터라는 것…
화를 거듭할수록 울화병 유발 요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오.
펠리시티 힘내라!!!

간만에 B급영화: shrknado

http://www.youtube.com/watch?v=iwsqFR5bh6Q

엑스박스 비디오인가 아마존 인스턴트 비디오인가에서
무료로 볼 수 있어서 호기심에 본 영화입니다.

상어를 소재로 쓴 것치고는 참신했지만
개연성 노, 상어의 생태 이해도 노,
과학적 검증 노, 그리고 후반으로 갈수록 재미도 노…

아무 이유 없이, 어이없게 죽어나가는 캐릭터와
알 수 없는 스토리를 가진 리얼 B급 영화였습니다.

내 시간 돌려줘..ㅠㅠ

스위니 토드 감상

dvd를 사 두고 근 일년 방치해 두었던 스위니 토드를 드디어 보았습니다.
믿고 보자 조니뎁이라는 슬로건 하에 두근거리며 기동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기대에는 못 미친 작품이었습니다.
마더구스를 연상시키는 스토리와 각종 연출, 개성있는 캐릭터들은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떨어지고
마무리를 너무 급하게 해서 석연치 못한 부분이 있었네요.

그래도 킬링타임용으로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뭐 저야 보는 내내 “스네이프 교수가 저럴리가 없어 엉엉”
이런 생각이나 했습니다만…^^;;
(아니, 뭐 솔직히 말하자면 스네이프도 나름대로 집착 쩌는 변태 캐릭터에 가깝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