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곶아 발치하다!

김고순의 혈뇨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에 가는 김에
김꼬쟈도 데려가서 건강검진 하자….
이런 계획이었는데 어느새 의사와 김꼬쟈군의 발치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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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질질 흘리는 건 아니지만 입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어서 수시로 닦아야 하고
입냄새가 심하게 나며 나날이 체중이 줄어가서 밥알을 하나하나
집어 먹여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저희로서도 큰 결단이긴 했지만
전신마취하고 발치수술을 하기로 헸습니다.
저는 당연하게 의료지식이 없어서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게 제일 큰
문제일 거라 생각했지만 의사 선생님 소견으로는
수술 후 나빠질지도 모르는 신장 수치와 발작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을
더 큰 위험요소로 꼽으시더군요.

아무튼 수술 날짜가 잡혀서 꼬쟈를 병원에 맡기고 온 날은
매우매우 눈이 많이 왔습니다.

아침에 갖다 맡기고, 수술 끝나면 연락주겠다는 말을 들었기에 하염없이 17시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안 오고 병원은 18시에 문 닫는지라
참다 못해 전화를 했더랬지요.
수술 스타트가 좀 늦었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연락이 늦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일단 아직 멍한 상태긴 하지만 마취에서도 잘 깨어났다 해서
바로 달려갔습니다.

대략 8개 뽑았고, 어금니쪽은 이제 다 없는 상황.
앞니와 송곳니는 남았습니다!
대략 십만엔 깨질 걸 생각하고 갔는데…

팔만엔 조금 넘는 가격에 보험 적용 하니 이만사천엔…
보험 만세입니다. 담낭수술 전에 들어놨었어야 하는데ㅠㅠㅠ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늦었죠.
이 이후 알게 되었지만 한국 펫보험은 고양이 발치를 커버하는 것이
없다 하네요?
아직까지는 펫보험 등의 혜택 범위는 일본이 더 광범위한 것 같습니다.
한국 펫보험도 빨리 커버 범위가 넓어지면 좋겠어요.

여튼 한달음에 달려가서 선생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아직 비몽사몽 비틀거리는 꼬쟈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근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좀 많이 후회했던 게..

마취도 안 풀린 상태에서 폭설 내린 날씨에 차에 태워서 그런가
집에 오니 늘어져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놀란 나머지 꼬쟈 전용 전기장판을 최대치까지 틀고 이불도 덮어주니
곧 떨림은 가라앉았습니다.
가라앉을 때까지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며 하루 입원시킬 걸
내 욕심으로 괜히 데려왔다 등등 아주 눈물이 눈앞을 가리더군요.

링거 꽂아놨었나? 앞다리 털이 밀려있습니다…
다른 쪽 다리도 동그랗고 조그만 밀린 자국이 있더군요.

뼈발린 닭다리 같습니다…

2월 초중순?에 수술했는데 경과는 매우 좋은 편입니다.
몇 시간 후 정신 들자마자 밥그릇으로 돌격하는 등…
수술 후 일주일은 병자우대 기간으로
매 끼니마다 페이스트형 파우치 습식을 물에 개서 주고,
츄르형 간식도 종류별로 사두고 배고파하는 거 같으면
그릇에 짜서 물에 개서 먹기 편하게 주고…
츄르형 간식 종류가 이리 많은지 처음 알았습니다.
수분보급, 영양보급, 신장배려 등등등등…

지금은 하루 한두끼 페이스트형 습식 파우치를
물에 개서 주고, 나머지는 건식을 먹게 두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가 없어서 불편한지 먹다가 계속 툭툭 떨궜는데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건식도 먹고, 습식 먹고 싶으면
조용히 앉아서 계속 저를 쳐다보는 등, 의사표현이 확실해졌습니다…
담낭수술 후 8킬로>5킬로였다가 이빨 관련 문제가 심화됨에 따라
4.4킬로까지 살이 빠져서 걱정했는데
아직 그람수 달아보진 않았지만 살도 좀 오르고 있는 것 같고,
침도 안 흘리고 입냄새가 싹 사라졌습니다.
콧물도 엄청 심해서 온집안에 콧물 뿌리고 다녔는데
그것도 거의 사라졌고요.

제가 조금 더 일찍 결단을 내렸으면 애가 좀 더 일찍부터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는 있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좀 낫게 해 줘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김고순은 이렇게 되지 않게 신경써서 양치해줘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본인은 싫어해서 칫솔만 보면 도망가지만…
여튼 앞으로는 애가 아파 보이면 바로바로 조치를 취해야겠습니다.
꼬쟈야 오래오래 같이 살자!

스카이트리 근처의 텐동집 花屋(하나야)

스카이트리 근처(+우리집 근처)에 오래된 텐동집이
하나 있습니다.
5년전 이사 왔을 때부터 있었는데 가볼 기회가 없었고,
Covid 시기에 폐점했다 열었다를 반복했었습니다.
또한, 점주가 불친절하다는 평가를 보았기에 가 볼 생각을 못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얼마 전에 한번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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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좀 소심한지라 처음부터 가게에 들어가서
먹지는 못하고 1000엔짜리 새우텐동을 포장해 왔는데
맛이 괜찮기에 직접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날잡아서 회사 끝나고 가게에 가보니 점주 할아버지가 손님 없는
상태에서 의자에 앉아 밖을 보고 계시더군요.
밖에서 들여다보았다가 눈이 딱 마주쳐서 엉거주춤하게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가게 내부 사진을 디테일하게 찍진 못했지만
카운터석 5-6석, 다다미 좌석에 2테이블 있습니다.
다다미 좌석은 가정집 다다미방 분위기고,
텔레비전도 있고 인테리어도 인테리어한 것 같지 않은
그냥 생 가정집의 방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넓고 깨끗한 가게를 원하시는 분들께는 추천할 수 없는 가게라 생각합니다.

벽면..
벽에 걸린 전화번호부는 벌써 20년은 전 물건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텔레비전 밑에 놓인 꽃(조화일까요)과 칠복신 중 하나… 호테이일까요?
방석 부분이 다다미방 2인석 부분입니다.

방구석에 있는 알 수 없는 공중전화…
몇십 년 된 가게이니 이 동네 사람들이 전화가 필요하면 여기 와서
이 공중전화를 썼던 게 아닌가?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테이블 위.
조미료와 손소독제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계란말이.
별 생각 없이 시켜봤는데 맛있습니다.
달지 않으면서 다시 맛도 나고 짭짤해서 한국인 입에 맞는 계란말이였고,
맥주와 함께 맛있게 먹어치웠습니다.

연근, 새우, 오징어 튀김과 쯔유.
탄수화물을 피하는 중이라 튀김만 시켰습니다.
술과 튀김도 피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지만 뭐 일단 하나라도 피하면
감량효과는 있겠…죠?
연근은 아삭하고 맛있었고, 새우도 탱글했습니다.
오징어는 부드러워서 탱글한 식감을 원하는 분은 안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주문 받으면 재료를 잘라서 튀김옷 입혀서 튀겨 나오기 때문에
서빙에 시간은 좀 걸리는 편이지만 다다미방 좌석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면서 평소 안 보는 일본 TV를 보며 기다리고 있자니
그냥 친척집에서 식사 기다리는 느낌이 들어 편안하더군요.
아, 2차 방문 때는 연근이 없어서 호박을 시켰는데 호박도 맛있었습니다.
2차 방문 시의 사진은 먹느라 바빠서 없습니다…

카키아게 2종. 해산물 카키아게와 새우 카키아게.
각 800엔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갈라보았을 때 해물/새우의 큰 덩어리가
굴러나오는 걸 고려하면 나쁜 가격이 아닙니다.
재료도 신선하고 튀김은 바삭하고 맥주는 맛있고.
좋습니다.

동행자가 먹은 새우텐동.
새우 세 개와 야채 4종의 튀김이 밥 위에 얹혀 있습니다.
그 외에는 야채절임과 연두부, 된장국이 함께 나오고요.
맛만 봤는데, 그냥 덴뿌라와 마찬가지로 재료가 신선하고 좋습니다.
동행자 말로는 타레가 약간 단맛이 있었다는데
저는 타레 별로 없는 부분으로 먹었어서 그런지 그렇게 달다는 느낌은
못 받았습니다. 이 새우텐동이 1000엔.

이쪽은 하나야 텐동입니다.
뭐뭐 들어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나고, 보리멸, 새우2마리, 관자, 굴, 야채 3종…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격은 1800엔.. 이었던 것 같습니다.

깔끔하고 넓고 빠르고 세심한 서비스를 기대하는 분께는
추천하지 않는 가게지만, 고즈넉하게 TV소리 들으며
일본 옛날 음식점 분위기를 즐겨보고 싶은 분들께는 추천합니다.
가게 주인 할아버지도 퉁명스럽다는 평가와는 달리
텐동도 안먹고 덴뿌라 단품주문 해대는 외국인에게 싫은 낯 하나
안 보이고 친절하게 대해 주셨고요.
음식도 이정도면 맛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점심에는 소바+텐동이 세트로 된 만복세트도 1000엔 미만으로
저렴하게 파니 나는 많이 먹는다 하는 분은 이 런치세트도 체크해봐 주세요.
아, 주의하셔야 할 점은 구글 맵에 있는 가게 설명과 좀 달리
변칙적으로 영업해서, 비오는 날에 영업 안하시고
손님 없으면 문 닫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こんがり、パン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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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빵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빵을 좋아하지만 퍽퍽하거나 겉이 딱딱하거나 잔세공 및 잡다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빵을 좋아한다. 로겐브로트, 피셀, 바게트, 포카차, 르뱅빵, 베이글, 치아바타…

이런 빵들은 그 자체의 맛이 강하지 않아 안주로 삼기 적절하고 기분에 따라 어레인지하기도 좋다. 살을 뺀답시고 탄수화물을 줄이고 있기에 항상 구비해 두지는 않지만, 왕왕 내 손에 들려 우리집 문턱을 넘는 빵들이기도 하다.

 내가 빵을 좋아하게 된 건 어머니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 빵 체인점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기 시작했을 무렵, 운 좋게도 우리집 근처에 몇몇 체인점이 생겼다. 그 때부터 꽤나 자주 어머니와 함께 빵집에 가서 빵이 가득 담긴 봉투를 안고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빵은 파리바게트의 하드롤이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그 밖에도 새 빵집이 생길 때마다 어머니는 꼭 가서 이것저것 사오셨다. 한스베이커리, 나폴레옹 제과점, 조성모 베이커리 등 아마 당대의 빵은 다 섭렵하지 않았을까 싶다.

급기야 어머니는 당신 손으로 제과제빵을 시작하셨다. 제과제빵 교실에 다니시며 매주 생크림 케이크, 초코 케이크, 바바로아, 마들렌, 휘낭시에를 필두로 한 디저트에서 각종 빵들이 집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집에 있는 가스 오븐은 쉴 틈이 없었고 가족들이 빵을 다 소비하지 못하자 어머니는 시시때때로 주변인들에게 케이크, 과자, 빵을 나누어주셨다. 가족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나는 항상 시식 담당으로, 어머니의 창조물을 배불리 먹어 살이 오동통 올랐다. 당신 책임이면서 항상 어머니는 나더러 살쪘다고 놀리셨기에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도 또한 즐거운 추억이다.

 대학에 들어갈 즈음이던가. 어머니를 따라 나도 빵과 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그분처럼 요리에 대한 넘치는 재능은 없었기에 간단한 초콜릿, 양갱, 쿠키, 머핀을 만드는 데 그쳤지만.

그러다가 중국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본격적으로 제빵을 시작했다. 일을 하던 곳이 그렇게 번화한 곳이 아니었기에 마음에 차는 빵을 사먹을 곳이 별로 없었고,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작은 오븐을 사서 빵을 굽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우선 중국 수퍼마켓에는 면을 만드는 데 특화된 중력분밖에 없고, 빵을 만들 강력분이나 과자를 만들 박력분은 타오바오에서 구입을 해야 했다. 이게 한국처럼 총알배송이 아니라 구매 후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일주일이 걸릴 때도 있었고, 터져서 오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발효빵을 만들 때는 반죽을 충분히 치대야 하는데 이게 상당히 시간과 힘을 필요로 했다. 밀가루 반죽을 테이블에 놓고 족히 한시간은 후두려 팼던가. 이 작업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바로 반죽기를 구입하여 다행히도 죄없는 반죽을 폭행하는 일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서는 금방 벗어날 수 있었다.

참으로 열심히 빵을 구웠다. 미니 오븐으로는 한번에 미니식빵 한두개, 디너롤이나 성형빵 4-6개가 고작이었기에 굽고 꺼내고 굽고 꺼내고의 반복이었다. 때때로 팀원들의 생일이면 케이크, 파운드케이크, 파이 등을 구워 회사에서 단촐한 생일파티를 하기도 했다. 다 같이 타향살이 하는 처지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시작했던 일이고, 제빵사나 파티시에가 만드는 것 같은 세련된 물건은 구워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박한 케이크를 두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태국에 가서는 조금 더 본격적이 되었다. 집이 넓어졌으니 오븐도 좀 더 큰 것을 사고 반죽기도 한층 커졌다. 만드는 빵의 바리에이션도 조금 늘어서, 가족 취향에 맞춘 소시지빵, 야채빵, 피자빵, 콘빵 등을 한번에 30개씩 생산해 냈다. 그리고 밸런타인 데이 같은 때는 아망드 쇼콜라, 브라우니, 쿠키 여러 종, 머핀 여러 종 등 도합 십여가지 과자를 무더기로 구워 가족의 회사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제법 인기가 있었다고 들었기에 꽤 보람을 느꼈다고 기억한다.

일본에 와서는 집이 좁아지고 일이 바빠져 중국이나 태국에 있었던 때처럼 빵을 굽지는 못한다. 하지만 재료를 개량하여 섞는 일, 반죽기에 넣고 적절한 반죽이 될때까지 반죽하는 일, 부재료를 만들어서 반죽에 채우고 모양을 잡는 일, 무엇보다도 빵이 구워질 때 집 안을 가득 채우는 향긋하고 따스한 냄새. 이 모든 것을 좋아하기에 언젠가는 다시 빵을 구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빵에 관한 내 추억은 대부분이 즐거웠기에 서점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망설임 없이 손에 들고 계산했다. 일본 문필가들이 멋진 필력으로 자아낸, 빵에 관한 멋진 추억애 대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책을 열었지만 웬걸, 내 예상과는 달랐다.

중국 사기를 읽지 않았기에 彘肩を辞せぬ壮士가 무엇인지 몰랐다.

고사를 몰라 櫪に伏する老驥가 무엇인지 몰랐다.

미국 문화에 둔해 マッコール라는 잡지가 무엇인지 몰랐다.

영미시에 관심이 없었기에 ルパート・ブルック이 썼다는 길고 아름다운 시를 몰랐다.

영미 문학에 문외한이기에 ゼロ弾きのゴーシュ라는 이야기를 몰랐다.

바느질에 조예가 없어 ドロンワーク은 무슨 신형 드론 기술인가 했다.

일본 영화를 외면했기에 魚河岸の兄弟分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하, 문필가들과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나의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인텔리전스에 분배해야 했구나. 게다가 작자의 연령이 각양각색이어서 근대문학을 읽을 때나 등장하는 한자나 어휘가 등장하는가 하면 어느 사이엔가 현대의 어휘로 돌아오곤 하여 들로리안을 타고 시대를 오가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의 추억을 엿보고 싶었기에 오랜만에 사전도 찾아보고, 인터넷도 뒤져가며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었다.

빵은, 지금은 동전 한두 개(한국 기준 지폐 한두장)로 살 수 있는 흔해빠진 물건이기에 현대인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좀처럼 없을 물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낫토 얹은 빵을 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전후 일본에서 어떤 빵을 어떻게 팔았었는지 알게 되었고 노새가 끄는 빵 판매 수레에 대한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기숙사 반지하 방에서 촌스러운 빵을 먹으며 청춘을 만끽했던 여학생들이 우아한 부인으로 탈바꿈하는 이야기도 즐거웠고, 언제 어느 시대에나 고지식한 교사는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이야기도 읽었다. 빵에 관한 행복한 일화에서 시작해서 말 그대로 눈물 젖은 빵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는 겪지 못한 시대와 그 시대의 이야기들을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로 경험했다.

항상 보는 물건이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며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대리 체험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대단히 귀한 경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쇼핑은 성공적이었고, 이 책이 내 서가에 꽂을 수 있던 것은 행운이었다. 이 책을 발견할 기회를 주었으며 함께 읽어 준 R양에게 감사를 보낸다.

미스터 도넛 고디바 콜라보

요즘 고디바에서 이런저런 콜라보를 하고 있는데…
미스터 도넛에서도 하기에 사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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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리네 쇼콜라
캐러멜 쇼콜라
가나슈 쇼콜라
가레트 드 로와 쇼콜라
이렇게 네 종류입니다.
가격은 미스도의 일반 도넛보다 2-3배 정도 되고,
맛도 좀 더 고급스럽습니다.
다음에 미스도 근처에 가면 또 사오고 싶네요.
추천할 만한 맛입니다.

동물의 숲X고디바 콜라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잊어먹었지만..
오늘 쇼핑센터 가서 고디바 앞을 지나가다가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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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패키지가 있었는데 저는 머그컵이 있는 패키지를 구입(구입시켰다..?)했습니다.
파우치 있는 세트도 좀 가지고 싶었어요ㅠㅠ

오픈샷. 이런 물건들이 들어있습니다.

얘네들은 핫 초콜렛입니다.
고디바 굿즈 만들 줄 모르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굿즈였는데,
핫 초콜렛 봉투 자체에 이미지가 인쇄되어 있어서 뜯어서 먹고 나면 보관이 용이하지
않을 것 같더라구요. 보통 코코아 봉다리에 넣어 주고 종이로 두르든지 하지ㅠㅠ
벌써부터 이거 어떻게 먹나 고민입니다.

고디바니까 초콜렛이 들어 있어야죠.
우리의 악덕너구리와 동사무소 아가씨입니다.
먹기 아까워서 사진만 찍고 고이 넣어두었습니다…
패키지에 있는 NPC들도 귀엽고, 씰도 하나 들어있습니다.

머그컵입니다. 머그컵 하단 빙 둘러서 귀여운 NPC들의 얼굴이 있네요.
아까워서 어떻게 쓸까요…
그냥 제 머그컵 컬렉션에 끼워넣어놓아야겠습니다…

신의 기록을 읽고…

 

로제타 스톤을 해독한 사람들의 이야기, 신의 기록을 읽고 간단하게 감상문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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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지구 상에서는 많은 문명과 언어가 사라졌고 현재도 수십 개의 언어가 소멸 위기 언어로 분류되고 있다. 또한 학자들은 머지 않은 미래에 현존하는 언어 중 반수는 사라질 것이라 예견한다. 지금의 우리는 이미 소멸한 문명과 언어를 다양한 기록을 통해 발견 또는  연구할 수 있고, 본서에 나오는 로제타 스톤도 그 중 하나다. 이와 같이 물질적으로 보존되기 쉬운 기록은 추후 발견될 가능성도, 해독될 가능성도 그럭저럭 높을 것이다.
그렇게 남겨진 기록들을 발견하곤 읽는 방법도 뜻도 모르는 언어를 해독하는 학자들의 연구 방법과 그 과정을 읽으며, 만약,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현대 인류와 대부분의 문명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대에는 석판은커녕 종이로 기록하지도 않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책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록이 실존하지 않는 ‘데이터’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만약 불운한 사건으로 인해 문명을 잃은 인류가 수십, 수백 년 후에 바닷속에서, 모래사막에서 태블릿을 발견했을 때, 이는 어떻게 작용할까? 그런 상상을 하며 이 감상을 작성해 보았다. 부디 현대의 우리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PC, 테블릿 등이 후대의 나칼 비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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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와 바깥을 차단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벽에 덧댄 천 사이로 햇빛이 비쳐들었다. 막대기와 판자를 이용해 얼기설기 얽은 선반 위에 어지러이 쌓인 물건들 사이로 먼지가 흩날렸다. 쌓여있는 물건들은, 두께나 크기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부분이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필수품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잡동사니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 물건들이다. 그 잡동사니를 주워모아 자신의 거처에 모아둔 괴짜이자 이곳의 주인 준은 어둑어둑한 거처 귀퉁이에 설치한 작업대 앞에서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오래도록 손질하지 않아 거추장스럽게 늘어진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던 물건을 향해 눈을 돌렸다. 조부에게 들었던, 마치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의 타래를 되짚으며 방금 막 뚜껑을 들어낸 물건의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검은색과 은색 판자들의 조합체. 그것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어떤 용도로 쓰이던 것일까 유추해 보았다. 조부의 말을 바탕으로 추리해 보자면 가장 크고 검은 이 판자가 기록을 보존하는 장치일까? 아니면 이 물건 자체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장치일까, 각 판이 가진 색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허리를 꺾은 갈대처럼 생긴 이 관은 무엇일까. 물이 길을 따라 흐르듯 무언가가 이 관을 따라 이동하는 것일까. 이 작은 돌기들은 무엇일까. 상단부와 하단부에 직선으로 몇 줄 배치되어 있는데 모두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은 또…

 오래동안 머리를 싸매고 궁리해 보았지만 아직도 결론에 다다르지 못한, 스스로에게 수십 수백 번 물었던 질문들을 곱씹으며 매만지던 물건을 다소 거칠에 밀어냈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떠올랐지만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거처 입구 옆에 세워 둔 호신용 막대기를 집어들고 두어 차례 휘둘러 보았다. 원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가벼운 데에 비해 제법 단단하며 삐걱거리기는 해도 길이 조절이 가능해 멋모르고 덤비는 사람을 상대할 때 유용했다.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며 우울한 눈으로 그 막대기를 바라보았다. 그가 모은 물건 중 하나는 이 막대기와 이어진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사실 자신의 컬렉션은 조부의 말처럼 지식의 보고, 기술의 결정체, 인류를 다시 번영으로 이끌 물건이 아니라 단순히 탈착 가능하고 사이즈가 다양한 둔기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몇 있었으니.
 엄습하는 어두운 생각을 떨쳐버리고 거처 입구에 세워 둔 나무판을 밀어냈다.

눈부신 햇살에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후 빛에 눈이 익숙해지고, 변함없는 풍경이 그에게 다가왔다. 준은 반쯤 무너진 건물에 꾸린 자신의 거처 입구에서, 그가 살아가는 세상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부식된 건물들, 군데군데 나뒹구는 정체 모를 조형물들. ‘자동차’라고 불렸다는 흉물스러운 물건들의 잔해들. 과거에는 저것들을 가지고 빠른 속도로 다른 곳에 이동할 수 있다 했지만 과연 그랬을까. 지금은 그냥 길을 가는 데 존재하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무성한 풀과 덩굴들, 그리고 흙으로 덮여 있어 제대로 살펴보기란 쉽지도 않았다. 조부는 본인도 부모님께 들었다며, 툭하면 준을 무릎에 앉혀 놓고 꿈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과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상대일지라도 눈 깜빡할 사이에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수단, 기름이라는 것을 사용해 날아가는 새만큼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탈것들, 화면을 누르기만 하면 무슨 물건이든 하루이틀 안에 집 문 앞에 도착하는 사회 시스템.
하지만 그 무엇도 준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이 황량한 세상에 살았고, 그런 편리함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편리한 세상 따위, 조모가 들려주던 날개 달린 요정이니 불을 뿜는 용이니 하는 이야기와 똑같을 뿐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된 이유는 수십 년도 더 전에 세계 각지에 근소한 시간차를 두고 일었던 지진 때문이라고 했다.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큐모에, 거기다 전 지구를 덮친 거대한 지진. 그리고 그 지진의 연쇄작용으로 각지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준은 살면서 화산을 본 적이 없지만 듣자 하니 산의 꼭대기에서 연기와 먼지와 자갈과 뜨거운 액체가 쏟아지는 현상이라 했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라, 지진으로 인한 해일이 전 세계를 덮쳤다. 전례가 없는 자연재해의 연타에 인류는 무력하게 스러질 수밖에 없었다. 건물들은 무너지고, 모든 생활 기반이 불타고 쓸려갔다고 했다. 교통과 통신 수단은 궤멸되어 가족, 친척, 지인들이 살아남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으며 그저 내가 살아남았음을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들었다. 어느 지역에 어느 정도의 인류가 생존해 있는지조차 확인이 불가능했고, 지진으로 인해 어느 정도로 지형이 바뀌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살아남은 한줌의 인류는 아무것도 없어진 세상에서 간신히 생명을 이어갔다.
폐허를 뒤져 쓸만한 물건이나 먹을 것, 입을 것을 확보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모든 생활 인프라가 사라진 상황에서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수렵과 채집, 제작을 근근하게 체득해 삶을 이어갔다. 인류는 지능과 자유로운 두 손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준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잡념을 털어버리고 걸음을 옮겼다. 매일같이 다니는 길이었지만 잠만 자고 일어나면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들을 헤치며 잠시간 나아가자 익숙한 판자문이 보였다.

“양 아저씨, 저 왔어요.”

조심스레 판자문-입구에 판자를 덧대어 놓은 것뿐이지만-을 밀며 들어가자, 가마 옆에 앉아 감자를 까던 수염 덥수룩한 남성이 고개를 들었다.

“준, 늦었구나. 아픈 건 아니고?”

적당히 대꾸하며 양 아저씨의 앞에 앉아 감자를 집어들었다. 준이 올 것이라고 알았던 듯 미리 놓여 있던 조악한 뼈칼을 들어 감자를 까기 시작했다.
양 아저씨와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부터 친밀하게 교류하던 사이였다. 양 아저씨 부부와 준의 부모님은 함께 밭도 일구고 수렵을 하던 사이로, 자식이 없기 때문인지 준을 매우 아꼈다. 그리고 준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그를 아들처럼 대해 주었다.
준 또한 그들을 자식처럼 따르며 행동을 함께 했지만 아무래도 수렵에 대한 재능은 없었던 듯 방해만 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양 아저씨와 부인을 도와 밭을 경작하고 생활에 쓸만한 도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다행히도 그는 괜찮은 농부였으며, 가죽을 손질하는 데에는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옷에 넣으면 좋을 듯한 식물을 발견해 종자와 식물 자체를 채집해 두었다. 이것을 재배하는 데 성공하면 분명 이 근방 사람들의 의복 사정이 좀 더 나아지리라.

“그래서, 그 잡동사니들은 언제까지 쌓아 둘 생각이냐?”

열심히 감자를 깎는데 이미 귀에 딱지가 앉히도록 들은 그 말을 양 아저씨가 다시 꺼냈다. 그는 외딴 곳에서 살며 시간만 나면 잡동사니를 찾아다 거처에 쌓는 준의 생활이 탐탁치 않은지 그쪽 거처를 정리하고 본인들 부부와 함께 살지 않겠냐는 말을 늘 하곤 했다.
하지만 준은 도저히 그의 조부가 남긴 그 그처와 물건들을,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모아 온 물건들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 이유가 조부와의 추억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언젠가는 찬란했던 인류 문명을 되찾을 실마리라도 찾아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지는 스스로도 아직 알지 못했다.

지겨운 양 아저씨의 설득이 시작되려는 찰나, 아주머니가 구운 고기 토막을 넙적한 돌판에 얹어 들고 들어왔다. 말수가 적고 몸집도 작은 여성이었지만 의외로 그녀는 동물의 가죽을  깔끔하게 벗겨 무두질까지 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어찌나 손놀림이 능숙한지 준은 도저히 따라할 수조차 없었으며 양 아저씨도 부인 앞에서는 꼼짝도 못 했다. 잔소리에서 벗어나게 해준 아주머니에게 마음으로 감사하며 돌판을 받아들었다. 오늘은 토끼고기인 모양이었다. 양 아저씨와 준은 감자 깎는 일은 잠시 쉬고 가마에서 굽던 감자를 꺼내 고기와 곁들여 간단하게 식사를 마쳤다.
그 후는 늘 그랬든 밭일을 돕고 양 아주머니를 도와 가죽을 손질했다.
때때로 양 아저씨네 작물이나 가죽, 고기와 바꾸기 위해 잡다한 물건들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준은 부리나케 달려와 물건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컬렉션에 추가할 만한 물건은 없었다.

 해가 기울 무렵, 준은 약간의 말린 고기와 구운 감자를 약간 얻어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집에서 쫓겨났는지 벌을 받는 중인지, 허물어져 가는 건물 밖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에 이마를 댄 남루한 행색의 아이를 발견했지만 애써 외면하고 발을 움직였다.
자신의 거처에 도착했을 때, 전혀 뜻밖의 생물체와 마주쳤다. 귀와 등은 검은색이었지만 다리와 배 부분은 황토빛인 난생 처음 보는 네발짐승이었다. 준의 거처 앞에서 앞다리는 쭉 편 채 엉덩이를 깔고 앉은 그 짐승은 혀를 길게 빼물고 헥헥거리며 준을 바라보았다. 새까만 눈동자와 앉아 있는 자세에서 공격성은 엿보이지 않았지만, 드러난 이빨을 보고 준은 호신용으로 들고다니는 막대기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낯선 것은 그 네발짐승 뿐만이 아니었다. 거처 입구에 기대어 둔 판자가 옆으로 치워져 있던 것이었다. 침입자인가, 대체 누구지. 무엇 때문에? 그보다 이 네발짐승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집으로 들어간 순간 뒤에서 덮치는 건 아니겠지. 온갖 생각이 교차했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짐승에게 등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옆걸음질로 조심조심 이동해 거처로 들어갔다. 일단 입구 쪽에서 보기에 내부가 흐트러진 흔적은 없기에 안심했지만, 침입자가 누구인지, 아직도 이곳에 머물고 있는지, 목적은 무엇인지 무엇 하나 알 수 없었기에 조바심이 느껴지고 막대기를 쥔 손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그때, 밖에 있던 네발짐승이 큰 소리로 한번 짖었다. 제법 큰 울음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침입자가 안쪽에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의 모습을 본 준은 헛것인가 싶어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빛나는 머리카락이었다. 마치 드리워진 석양의 끝자락처럼 빛나는 색을 잠시 넋놓고 보던 그는 잠시 후에야 그의 푸른 눈과 우람한 체구를 볼 수 있었다. 정면으로 맞붙기에는 승산이 전혀 없어보이는 거구의 남자였다. 어린 시절에 조모에게 들었던 이야기에 나오던 거인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그 거구의 남자는 준을 보자 활짝 웃으며 한발 성큼 다가섰다. 준은 자연스럽게 한발 뒤로 물러났다.

“Are you 준?”

알 수 없는 언어에 발음도 불분명했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며, 또 자신을 찾아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여차하면 양 아저씨네 집까지 도망갈 생각으로 거처 입구를 향해 뒷걸음질쳤지만 어느 틈엔가 일어난 네발짐승이 길을 가로막았다.
이판사판이다. 호신용 막대기를 쥔 손에 힘을 주자 침입자는 다급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Wait! Let’s talk, 얘기! 이야기!”

뻔뻔하기 그지없는 남자였다. 남의 거처에 멋대로 침입해서 뒤지고 있던 주제에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것일까. 그는 준의 컬렉션들을 손가락질하며 말을 이었다.

“저거, 재미, 많이, 봐?”

대체 무슨 헛소리인가. 준은 역시 이 말도 통하지 않는 침입자를 쫓아내거나 도망치는 게 최선이라 생각하며 어떻게 빠져나갈지 머리를 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양 아저씨 말대로 입구를 하나 더 마련해 두는 게 나았으리라.
다행히도 그 정도 눈치는 있는지 그는 다급하게 허리춤을 더듬어 두루마리를 꺼내 펼치더니 정신없이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interesting… 재미…, stuff… 물건… 재미있는 물건! 많이!”

재미있어 보이는 물건이 많다는 뜻인가.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가. 이런 종류의 비야냥은 이골이 날 정도로 들었기에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단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하는 생각만이 준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좀처럼 준의 경계심이 누그러들 기색이 보이지 않자, 그는 꿇어 엎드려 자신이 가져온 거대한 꾸러미를 풀어 헤치더니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서 바닥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본 준의 눈이 서서히 휘둥그래지고, 막대기를 쥔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급기야 막대기를 내던지고 그가 꺼낸 물건들 쪽으로 달려가 털썩 무릎을 꿇고 정신없이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거처 안까지 들어온 네발짐승이 준 옆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지만 그런 것에 주의를 쏟을 여력이 없었다.
한순간에 준의 혼을 쏙 빼놓은 침입자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씩 웃었다.

“나, 알렉스. 우리, 할래? 이거, 같아.”

다시 한 번 인류를 발전과 번영으로 이끌 두 연구자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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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10 노딕스 일본 회중시계 한정판..

발매일 당일… 일하는데 택배가 와서 뭔가 했더니 기다리고기다리던 이스 10….
전체샷은 대충 이렇습니다.

회중시계와 나침반과 열쇠고리같은 무언가…

회증시계. 사이즈가 작고 이쁘네요. 사진 박고 고이 닫아서 뽁뽁이로 싸서 다시 박스행…

나침반. 이것도 사진 박고 뽁뽁이로 싸서 다시 박스행…

가방 안에 있는 게임 패키지?입니다. 디자인 괜찮네요.

이… 이 스티커를 뜯으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겠죠…
살살 뜯어보려다 안 되어서 과감하게 칼로 잘라버렸습니다ㅠㅠ

하얀 박스 안에 들어있는 사운드트랙과 엽서?와 게임 패키지

한정판 구성물 사컷만화집. 얇습니다.

안에는 만화가…
일중이라 사진만 찍고 넣어두었습니다.

핀뱃지.

태피스트리…

게임 패키지와 회중시계, 열쇠고리?, 만화까지 다 수납되는 사이즈의 가방입니다.
태피스트리가 안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고…
얼른 일 끝나면 좋겠네요 플레이하게…

팔자에도 없는 PCR 검사 1편 in 도쿄


회사 동료가 양성 판정을 받았기에 그녀와 같은 날 같은 플로어에서
근무했던 저도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일단 전 별다른 증상은 없었으며
약간의 콧물, 목의 위화감 정도였지만
상사가 양성 받았다는 연락을 한 다음날,
왼쪽 가슴 밑이 가만히 있어도 아프고 숨쉬면 더 아프고
심호흡은 못하겠고… 그런 상태였습니다.

일단 진행 상황은
⇒회사
PCR 검사 받고 결과 나올 때까지 회사 오지 마^^(잘된 일인가..)

그래서 열띰히 알아 보는데 병원들은 PCR검사 받고 싶으면
관할기관에 먼저 전화 해서 소개 받고 오라더군요…
눈에 띄는 증상도 없고 소개도 안 받으면 검사 안 해 준다고.
혹시나 해서 집 근처에서 보았던 임시 검사소 있던 데에 갔으나
철거되어 있었고요.

⇒S구의 발열 상담 센터
3시간 줄창 전화한 끝에 연결되었습니다.
증상이나 접촉한 시기 등 이것저것 묻다가, 교통기관 이용하면 안되니까
도보권의 병원을 소개해 주겠다. 거기 니가 직접 예약해서 받아라.
근데 요즘 예약이 밀려서 검사하려면 2-3일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가족은 농후접촉자가 아니니 검사 대상이 아니다.
본인이 증상이 있으면 우리 센터로 전화해서 직접 상담 받으라 해라.
(바깥양반이 기저질환이 있다 했으나, 그래도 증상없으면 병원 소개는 불가능하다더군요)

⇒소개 받은 병원
1시간 전화한 끝에 연결되었습니다.
오늘은 수요일이지만 예약이 밀려서 토요일에야 검사할 수 있고,
당일날에는 “현금” 5, 6000엔을 들고 와라.
WHY? PCR 검사만 무료고 초진료나 약 처방료는 유료니까.
이런 상황입니다.

어디 가지 마라, 사람과 만나지 마라, 대중교통 이용하지 마라,
가족과 접촉도 피해라 이런 말은 하지만 따로 격리하란 말도 안 하고,
구호물자!!! 준단 말도 안 하고 그냥 있으라네요!!
마이 주민세 Where…ㅠㅠ

코로롱 사태 시작 후 마트도 거의 안 가고 놀러도 안 가고
가는 곳이라곤 주 1회 정도 회사<>집뿐이었는데
진짜 날벼락입니다..

2021년 새해맞이 – 도쿄 아사쿠사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플러스 정초의 아사쿠사는 안 가는 게 좋다는 걸

몸으로 체험해 알고 있었기에 3일에야 한 번 나가 보았습니다.

집 앞에 신사가 있는데 그 앞에 인력거가 서 있더군요.

집 앞의 신사가 소와 관련된 신사라 그런지 새해 첫날도 아닌데

기이이이일게 줄이 서 있더군요.

그래서 이 신사는 패스하고 아사쿠사로 이동했습니다.

스미다 리버파크에 소띠해라고

이런 그림이 붙어 있네요.

센소지까지 왔습니다.

평상시라면 새해가 밝은 후 일주일 정도는

나카미세쪽까지 길게 줄을 서 있었는데

비교적 한산(?)했습니다.

센소지에서 오미쿠지를 뽑았습니다.

예전 일본 유학 시절 매년 오미쿠지를 뽑았습니다만,

5년 연속 흉을 줬던 센소지…

그리고 올해도 너무 당연하게도 흉을 줍니다.

내 백엔 돌려줘, 센소지.

변함없는 센소지 경내.

정초라 그런지 산쟈마츠리에 쓰는 가마 격납고(?)도

열어놓았습니다.

맨 마지막 사진은 항상 들르는 이나리 신사.

평소에는 사람이 없지만 오늘은 사람이 있네요.

스미다 리버파크 위에서 보는 1월 3일의 일몰.

왜 때문에 생겼는지 모를, 스미다 리버워크 가운데의

‘연인의 성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조형물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백화점 지하에서 사온 것들.

오랜만에 먹는 타테마키였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여러가지로 평소와는 다른 연말연시였던 것 같네요.

빨리 이 난리통이 진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에서 먹은 정크푸드..

버거킹에서 기간 한정으로 팔았던 패티버거(?)

익스트림 머시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번즈 없이 패티를 위 아래로 넣어서 패티 4장이었던…

저는 맛만 보고, 먹어본 사람 말로는 목이 막히고

배가 부르다고ㅋㅋㅋ

이것 역시 버거킹에서 사온

치즈 칠리 어글리 비프버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기간한정이었고 생각보다 매콤했었네요.

물론 전 맛만 본,,,

맥도널드 겨울 한정 그라탕 크로켓 버거입니다.

제 취향이 아닌자라

매 겨울마다 에이씨 내년엔 안먹어 하다가도 한정이라는 말에

매번 사는 그런 제품…

역시 저는 맛만 봤지만 그냥 그라탕 크로켓은 좀 밍밍,

비프스튜 들어간 게 좀 맛이 있네요.

유명한(?) 치즈케이크 전문점 르타오의

겨울 한정 상품, 단호박 치즈케이크입니다.

뭔가 더 복잡한 이름이 있던 걸로 기억하지만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은 관계로

그냥 단호박 치즈케이크라 부르겠습니다.

맛있었어요.

내가 일본 오면 살찌는 이유를 알 거 같았던 디저트입니다.

일본 피자 체인 피자라의 윈터 크랩이라는 피자.

음… 게, 새우, 스모크 베이컨, 머쉬룸 등이 들어 있다네요.

사진상으로는 게살이 안 보이지만

잘 발라낸 게살이 여기저기에 나름대로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

근데 가격이 사악해서…

때마침 2000엔 할인 쿠폰에 라인페이 포인트 영끌해서

제로엔으로 사 먹었지 돈내고 먹으라면

안 먹을 거 같아요ㅋㅋ

이상 일본에서 먹은 정크푸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