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느니만 못한 피카츄 대량발생 이벤트

모처럼 한국에 와 있는데
‘피카츄 대량발생’ 이벤트를 동대문에서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과거의 향수를 돌이켜 보며 가 볼까 했더니
누구누구씨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안 가는 게 좋을 거 같다 하더군요.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동대문으로 향했습니다.
대략 2시 반쯤에 도착을 했는데….
진짜 헬 오브 헬이었습니다.

무질서한 인파에 안내요원 하나 없고
안내판, 안내방송도 없는 카오스 상태.
정말 내가 여기 왜 왔나, 같이 와 준 사람에게 미안하다,
이런 상황이었네요.

대략의 문제를 집어 보자면

1. 주최측의 예상 방문 인원 파악 부재
대체 몇 명이 올 거라 예상했는지 안내요원도, 안내문도 없고
회장 바깥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각종 포털과 SNS만 사전에 조사했어도
사람들이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으며 방문객이 얼마나 될 지는
어림잡을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피카츄도 고작 10마리(?)에 그쳤다고 하니
치명적인 실수였던 것 같네요,

2. 주최측의 관람객 통제력 부재
예상 방문객을 적게 예측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돈 들이기 싫은 이벤트였는지 행사 안내 요원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전시장 밖의 광장에는 안내 요원 하나 없고, 기나긴 기다림 끝에
회장 입구에 도착해서야 한 명 만날 수 있었습니다.
행사장 내부에도 그건 마찬가지여서 각 이벤트 존에만 한두명 있을 뿐,
내부에서 길이나 각 이벤트 존을 안내하는 사람 하나 없어
무질서함의 극을 달렸습니다.

3. 주최측의 안내력 부재
피카츄 대량발생 이벤트는 첫 타임 이후 모두 캔슬되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건물 안에서만 뭐라 하는지 모를 웅얼거리는 방송으로
안내하면 뭘 합니까?
바깥에서는 수천~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바깥에도 적절하게 방송을 하던가, 방송 장비가 없으면
진행요원이 확성기라도 들고 다니며 외쳐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요?
또한, 굿즈를 사기 위해 2-3시간 기다렸지만
원하는 굿즈가 매진되어 허탕만 쳤다는 관람객도 여럿 있더군요.
굿즈 매장에서 무언가가 매진되었을 시, 그에 따른 안내도 했다면
좀 더 원활한 진행이 가능했을 거라 봅니다.

4. 시민의식 부재
미디어에 의하면 약 2만 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합니다.
협소한 장소에 통제 인원 없이 2만 명이 모인 것 치고는 큰 사고가 없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미칠 듯한 시민의식의 부재가 두드러졌습니다.
밀치고 끼어드는 건 당연한 일에, 한쪽에서 무언가 큰 소리가 나면
알아보지도 않고 그 쪽으로 수백의 인파가 앞다투어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또한 하늘 높이 솟아오른 셀카봉들도
안전사고를 유발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고요.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이벤트 장소 광장에 있는 유적을
관람객들이 짓밟는 광경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적을 둘러싼 돌에 피카츄를 보기 위해 올라섰고,
다른 곳에서 함성이 들리면 그 쪽으로 달려가기 위해
유적을 짓밟고 달리며 모래먼지를 일으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해당 유적에는 군데군데에 유적이니 보호하자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사람들 눈에는 들어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많이 안타까웠죠.

결국 저와 동행에게 남은 건 주최측 및 관람객들에 대한 실망감과
피곤, 그리고 하도 밟혀서 망가진 신발 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구미가 동하는 이벤트가 있어도 어지간하면 가지 말자…
이런 교훈도 얻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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